지난 3월 10일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나서 결과에 대해 분석하며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눈에 띈 것은 선거 막바지에 캐스팅보터로 떠오른 2030 여성들의 입당 러시 소식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에 따르면 대선 직후인 3월 10일과 11일 이틀간 1만1000여 명이 온라인으로 입당을 신청했으며, 민주당 전체로 보면 대선 직후 나흘 동안 10만여 명에 달하는 신입 당원들의 가입 신청이 쇄도했다고 합니다.
신입 당원들 중 여성 비율이 80%에 달하고, 2030 여성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는데요, 이에 권인숙 의원은 3월 31일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20대 대선 이후 2030 여성들의 민주당 입당 의미와 과제 토론회’를 주최해 민주당의 미래에 대한 토론을 벌였습니다. 이를 의식한 듯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대선이 끝난 후 9천여 명에 달하는 신입 당원이 가입했으며, 당비를 1회 이상 납부한 당원(책임당원)은 21년 11월 전당대회 시점의 27만여 명에서 3배 가까이 늘어난 84만 명에 도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선거는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지역구 시⸳도의원에서 군의원에 이르기까지 국민을 대신할 일꾼을 뽑는 중요한 행사지만 그동안 유권자는 선거 때만 호명되는 한시적 존재로 여겨지기 십상이었습니다. 헐리버리 포커스 인터뷰에서는 이처럼 유권자로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정당 운영에 참여하는 정당인으로서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당적을 가진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처음이라는 20대 최주은 씨가 투표는 물론 입당까지 결심하게 된 것은 박지현 위원장의 존재 때문이었습니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했고, 2018년 제7회 전국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녹색당 신지예 후보에게, 지난해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기본소득당 신지혜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주은 씨는 선거권을 갖게 된 이후 진보정당이나 여성 후보에게 줄곧 투표를 해왔고, 이번 대선에서도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진보당 김재연 후보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주은 씨가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이재명 후보 선거 캠프에 합류한 박지현 위원장이 마스크를 벗고 처음 유세에 나선 날로, 주은 씨는 화장실조차 안심하고 갈 수 없는 한국 여성들이라면 N번방을 고발한 활동가가 마스크를 벗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수 없기에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선거 전날 이재명 후보가 마지막 유세를 홍대에서 한다고 해서 응원하러 갔는데 대선 후보 옆에 제 또래 젊은 여자가 파트너로 대등하게 서 있는 모습이 되게 울컥하더라고요. 이런 장면을 전에 본 적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처음 보는 장면인 거 같아요. 그날이 또 여성의 날이었잖아요. 이재명 후보가 유세에 온 사람들이 자기보다 박지현 위원장한테 더 관심 있을 거라며 마이크를 넘기는데 이렇다면 내 표를 줘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은 씨가 투표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민주당에 입당하기로 한 것은 대선 직후 박지현 전 민주당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이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대선 패배 후 지방선거를 이끌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된 박 위원장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권리당원으로 가입한 것입니다.
주은 씨는 최근 당 쇄신과 관련해 박 위원장의 당 내 고립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민주당이 박지현이라는 백신을 맞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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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한혜원 씨도 민주당이 자신의 첫 정당이라고 응답했는데요, 혜원 씨는 입당 계기로 권인숙 의원의 발언을 꼽았습니다.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 여성에 대한 두 거대정당의 태도에 참담함을 느꼈어요. 매년 국회의원 중 필요한 법안을 만드는 분에게 후원도 했었지만 지금은 그런 식의 소극적인 참여보다 좀 더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러던 중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님이 안으로 들어와서 당을 이용하라는 말씀에 결심을 굳히게 됐죠.”
정의당은 너무 규모가 작아 이용하는 데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혜원 씨에게 국민의힘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기에 정당으로서 이용하기에 가장 적당한 당으로 남은 선택지는 민주당이었습니다.
혜원 씨는 이제 야당이 된 민주당의 향후 5년간의 과제를 국민의힘과의 확실한 차별화로 꼽았습니다. ‘내로남불’이 왜 문재인 정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말이 되었는지, 이 말이 왜 대중에게 어필하게 되었는지 정확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지지자들은 두 거대정당이 매우 다르다고 생각하겠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큰 차이가 없으며, 또한 다르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더욱 위선적이라고 여기죠. 민주당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되어야 하며 그 변화를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인식시킬 수 있어야 해요. 그 첫 걸음은 차별금지법 제정이 되길 바라고요.”
혜원 씨는 페미니즘이라는 보편적인 가치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며 인구가 급속하게 감소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구조적 성차별을 줄이는 것은 한국이 당면한 최우선 과제임을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또한 아직도 여성을 계몽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듯한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이 세상의 변화에 대해 각성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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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조현정 씨는 민주당을 탈당했다가 복당한 케이스입니다. 현정 씨가 처음 민주당원이 된 것은 2012년으로, 대통령 선거 결과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으로 나오자 위기의식을 느끼고 민주당에 입당했습니다.
그러나 2018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권력형 성범죄로 법의 심판을 받은 뒤에도 2차 가해를 일삼던 그의 아들이나 후임 비서가 중용되는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탈당을 결심했고 이후 오거돈 부산시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범죄가 연달아 일어나는 걸 목격하며 민주당에 대한 희망을 잃게 되었습니다. 투표권이 생긴 이후 민주당에만 투표해온 현정 씨에게는 매우 괴로운 시기였습니다.
“서지현 검사님이 성폭력 고발을 했을 때 그렇게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건 여자는 검사씩이나 돼서도 성추행을 당한다는 비참한 현실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신지예 대표님이나 장혜영 의원님 사건을 알게 됐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거 같아요. 여자는 당대표나 국회의원을 해도 성폭력을 피할 수 없구나라는 비참함이요. 김지은 님 사건에서는 비서가 성폭력을 당할 수밖에 없는 수직적 구조에 분노했는데 신지예 대표님이나 장혜영 의원님 사건은 그냥 생각이나 감정이 회로가 끊기는 느낌이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현정 씨가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대안으로 고려했던 정의당과 녹색당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마침 회사에서 부서 변경으로 바쁜 시기를 보내며 입당에 대한 고민이 본의 아니게 뒤로 미뤄지는 사이 두 정당에서 연달아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고,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으로 좌절감에 빠져 있던 현정 씨는 어디로도 갈 곳이 없다면 제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0년 전에 민주당에 입당했을 때는 막연히 박정희 시대로 시계가 돌아가는 거 같고 그 시계를 다시 돌리려면 민주당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민주당의 뒷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거 같아요. 지금은 민주당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폭력은 어디에서든 일어나고 있고 그러한 현실을 피해서 대안을 찾는 게 불가능하다면 성폭력이 일어나는 현실을 바꾸라고 요구해야 할 거 같아요.”
현정 씨는 씁쓸한 현실이지만 이러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것도 민주당 아니겠냐면서 더 많은 여성들이 민주당에 들어와 함께 당을 바꿀 수 있다면 좋겠다고 소망을 피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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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김시연 씨는 녹색당에서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케이스입니다. 평소 동물권과 생태주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시연 씨는 2016년 녹색당이 동물권 활동가를 비례대표 1번으로 선출하고 정당에서 최초로 동물권을 총선 의제로 내세우는 등 동물권 관련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 대해 호감을 갖고 입당하게 되었습니다.
2016년 총선에서의 돌풍(정당 득표는 과천에서 5.6%, 서울에서 1.13%, 지역구 득표는 대구 달서갑 변홍철 후보 30.1%)과 2018년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표방한 신지예 후보의 선전(82,874표로 4위)은 시연 씨가 녹색당원으로 가장 자랑스럽게 기억하는 장면들입니다.
그리고 2020년 신지예 전 공동운영위원장이 당직자에 의한 성폭행을 고발하며 탈당한 것은 시연 씨에게도 탈당 동기가 되었습니다. 시연 씨는 청년녹색당(녹색당의 하부조직)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신 전 위원장이 성폭력을 당했을 때도, 아무런 연대하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조용히 탈당한 것이 녹색당원으로 가장 부끄러운 장면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나중에 신지예 위원장님 인터뷰에서 위성정당 논의와 성폭력 사건이 연결돼 있다고 얘기하신 걸 읽고 머리가 띵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2020년 총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였잖아요. 그런데 그 중요한 논의에서 운영위원장이 배제되었다니, 심지어 운영위원장이 성폭력을 당하다니요(신지예 전 위원장은 위성정당에 대한 당 내 논의 과정에서 아무런 정보도 듣지 못했고, 이런 분위기에서 ‘페미니스트 정치인’은 ‘함부로 해도 되는 존재’가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을 대표하는 여성을 이런 식으로 짓밟으면서 어떻게 동물과 환경 보호는 얘기할 수 있는지 환멸을 느꼈어요.”
신지예 전 위원장이 당한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탈당하고 지난해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출마한 그에게 표를 던진 시연 씨였지만 그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후보의 선거 캠프에 합류했을 때는 적잖은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민주당과 정의당 모두 성폭력 이슈가 발생한 곳이니 대안으로 국민의힘을 선택했다는 게 머리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위원장님이 지지하는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한다로 이어지진 않았어요. 이번 대선이 성폭력 심판 선거가 되길 원했다는 기사를 나중에야 읽었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국민의힘을 성폭력에 대한 심판자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거 같아요.”
시연 씨의 마음이 움직인 것은 박지현 현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한 뒤 대선 구도가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의 대결로 바뀌면서였습니다.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환경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연 씨는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했고, 대선이 끝나고 민주당에 입당했습니다.
민주당원이 된 시연 씨는 원외정당인 녹색당과는 다른 민주당만의 체계적인 시스템 같은 것은 아직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시연 씨가 당혹감을 느낀 지점은 권리당원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창구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었는데요, 박지현 위원장이 처한 상황이 지난 총선의 위성정당 논의에서 배제돼 있던 신지예 전 위원장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후보자 인준안 관련 회의를 박지현 위원장님이 참석할 수 없는 시간에 열어서 나중에 회의 내용을 통보했다고 기사가 나왔는데 그 상황이 너무 기시감이 드는 거예요. 박 위원장님이 당이 돌아가는 주요 상황에서 고립되어 있다면 심각한 문제잖아요. 힘을 실어드리고 싶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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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이 첫 정당이라고 응답한 30대 이세영 씨는 정당 가입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심상정 의원의 오랜 지지자입니다. 심 의원에 대한 지지를 따로 표현할 방법이 없어 후원회 계좌로 기부금을 보내거나 지역의 정의당 후보나 비례대표 투표에서 정의당에 투표를 해 온 세영 씨는 심 의원의 지역구로 이사하고 난 뒤인 2016년 지방선거부터 선거마다 줄곧 심 의원에게 표를 행사해 왔습니다.
지난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심상정 후보를 찍고 그가 출마하지 않았던 2012년 대선에서는 진보신당 출신인 무소속 김순자 후보에게 표를 주었던 세영 씨가 이번 대선에서 선택한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였습니다. 심상정 후보가 선거 유세를 중단하고 연락두절이 되었을 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심란했지만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단순하고도 폭압적인 공약으로 안티페미니즘 세력을 집결시킨 윤석열 후보가 너무 공포스러워 이번만은 심 후보에게 투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대선 끝나고 정의당에 후원금이 10억이 들어왔대나 12억이 들어왔대나, 기사 보고 눈물이 났죠. 나처럼 후원금은 정의당에 보내고 민주당에 투표한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그런데 금방 화가 나더라고요. 한국은 사실상 양당제고 정의당 같은 제3정당이 정말 힘들잖아요. 이렇게 후원금 보내고 죄책감 느끼는 거 말고 뭔가 다른 길이 없을까 고민하다 입당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당원이 되었다고 해서 뚜렷한 길이 보이지는 않는다는 세영 씨의 고민은 오히려 입당 전보다 더 깊어졌습니다. 청년정의당(정의당 하부조직) 강민진 전 대표의 성폭력 고발 때문입니다. 세영 씨는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대처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김종철 전 대표를 시민단체가 고발했고 경찰에서는 불송치 결정을 내렸어요. 당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성추행 사건인데 너무 이해가 안 돼서 알아보니까 고발한 시민단체는 피해자가 당한 성폭력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고 피해자는 수사를 원치 않는다고 진술서를 보내서 피의 사실을 특정할 수가 없대요. 결과적으로 가해자는 성추행을 인정했음에도 법의 심판을 피해간 거죠. 형사고발이 능사는 아니지만 이번 강민진 전 대표에 대한 성추행 사건을 보면 그 공동체적 해결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영 씨는 그래도 심상정 의원의 존재감이 있었던 대선과 달리 지방선거에서는 아예 정의당이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 같다며 한숨을 지었는데요, 그동안은 심 의원의 지지자로서 정의당과 정의당 후보에게 투표해 왔지만 이제 ‘포스트 심상정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정의당원으로 당을 쇄신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