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안녕하세요. 깊이와 관점이 있는 기획기사를 모은 REPORT EDITION으로 돌아온 뉴스 헐리버리입니다. 이달에도 여성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는 폭력 사건들이 줄지으며 여성들은 ‘여자라서’ 피해를 당하는 현실에 대해 다시금 분노해야 했는데요, 이번 호에서는 이와 같은 ‘젠더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를 지우고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보도 관행에 대해, 게임업계에서 여성 노동자를 향한 ‘사상 검증’이 노동권 박탈로 이어지는 행태에 대해, 유통기한이 지난 지 오래인 가부장적 남성상에 대한 신화를 끈질기게 재생산하는 미디어에 대해 비판하는 기사들을 모아보았습니다.
또한 저출생을 우려하는 목소리 뒤에서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있는 미혼모 출산에 대한 기획 기사와 동성 결혼에 이어 임신 사실을 공개하며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김규진 씨 인터뷰를 한데 묶어 전해드립니다. 문화 관련으로는 대중문화와 문학 속에서 재현된 ‘양공주’의 모습에 대해 고찰한 칼럼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사이렌>이 여성상과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룬 칼럼, 대중문화 속 여성상의 변화를 견인해가고 있는 <밀수>의 염정아 배우, <바비>의 그레타 거윅 감독의 인터뷰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이 외에 해외 소식으로 린다우 노벨상 수상자 회의 석상에서 벌어진 남성 과학자의 역차별 주장을 다룬 기사와 점점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휴머노이드 개발에서 여성형 모델이 강세를 이루고 있는 이유를 들여다본 칼럼, 아프간 재집권 2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탈레반의 여성 탄압에 대한 기사를 함께 전해드립니다. 뉴스 헐리버리는 9월 둘째 주 월요일 여성 인물 관련 기사들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에디터 윤단우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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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명명하는 것은 근본적 개선을 위한 첫 단계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인하대 사건 때를 비롯해 줄곧 젠더폭력이라고 명시하는 것을 꺼려왔다. 사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히 성별화되는 범죄에서 ‘젠더’라고 하는 것도 본질을 흐리고 뭉뚱그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데 우리 사회는 이마저도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남성의 여성 대상 폭력(Men’s violence against women)’이라고 정부 주도 성평등 정책의 기조를 내거는 스웨덴 같은 진전은 우리에게 여전히 멀고 먼 길이다.
이러한 제자리걸음의 배경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이 사회가 여성 대상 폭력을 어떤 문제나 사건으로 보기보다 ‘일어날 법한 일이 일어났다’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성이 피해자가 되고 희생양이 되는 것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을 만큼 대부분 내면화하고 있다. 그러니 이런 사건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를 뒤흔드는 뉴스가 되지 못한다. 범행 수법의 잔혹함이나 사건 관련 선정적 묘사 등을 통해 하나의 자극적 콘텐츠로 소비되는 데 그친다. ‘세상에 이런 일이’ 류의 조회수 빨아먹기용, 쓰고 버리는 카드 같은 취급을 당한다.
인권 의식이 부족한 사회에서 이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힘 없는 자가 당하는 건 당연하다’는 봉건적 인식의 잔재가 있을수록 이를 문제시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 ‘젠더폭력’ 언급 꺼리는 사회의 비극… 가해자 정확히 호명해야 (정지혜 기자, 세계일보, 23.0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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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 관악구의회 홈페이지 참여마당 ‘의회에 바란다’ 페이지에는 최인호 국민의힘 관악구의원(22)의 사퇴를 촉구하는 게시글이 이날 오후 4시 기준 738건 올라왔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사건 피해자가 전날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여성안심 귀갓길 전면 폐지’와 ‘불법촬영 감시 예산 삭감’ 등을 공공연하게 추진해온 최 의원을 비난하는 여론이 빗발친 것이다.
최 의원은 지난해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중 최연소인 만 20세에 관악구의회 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지난해 12월 유튜브 채널 ‘성평화 최인호’에서 “관악구에서는 대한민국 최초로 여성안심귀갓길 없어진다”고 의정활동을 홍보했다. ‘페미니즘은 성파시즘! 여성단체, 성인지예산, 여성가족과 폐지하라!’ 제목의 자유발언 영상도 올렸다. 지난해 3월 구의원 예비후보 시절에는 “대한민국은 몰카천국이 아니고, 남성들의 강간 카르텔이 만연하지도 않다. 오히려 치안이 좋고, 객관적으로 굉장히 안전한 나라다”며 “관악구에서 불법촬영 감시 및 점검을 위해 사용하는 예산 6412만원을 전액 삭감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기도 했다.
- 여성의 안전 ‘앗아버린’ 관악구의원, 성범죄는 우연이 아니다 (윤기은 기자, 경향신문, 23.0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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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악마'라고 지칭한 조주빈은 '혐의를 인정하는가',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감정은 없는가' 등의 취재진의 질문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전국을 충격에 빠트린 흉악범 조주빈의 말은 언론을 통해 널리 퍼졌고, 일부 미디어는 그의 삶을 앞다퉈 조명하기 시작했습니다. "학내 독후감 대회에서 1등", "학보사 활동", "평균 학점 4.0", "봉사활동 단체 가입" 등 언론들은 경쟁하듯 악마같은 범죄자의 이면을 담아냈습니다.
범죄와는 전혀 관련없는 '성실했던' 과거 행적 보도가 이어지자 누리꾼들은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며 분노했습니다. 전국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와 민주언론실천위원회도 성명을 통해 "피해자 보호가 최우선이 돼야 한다. '악마', '짐승' 같은 용어를 통해 가해 행위를 축소하거나 가해자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타자화하여 예외적인 사건으로 인식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 '은둔형 외톨이'·'불우한 가정'…범죄자에 서사 부여 그만해야 (최유나 기자, mbn뉴스, 23.0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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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에서 여성 노동자를 향한 ‘사상 검증 사건’은 반복되었다. 프로젝트문은 이 같은 사상 검증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유저들의 사상 검증을 용인하고 그 결과를 수용한 책임이 있다. 프로젝트문의 디렉터는 개인의 SNS가 회사와 연관되지 않게 해달라고 사전에 당부했다고 입장문에 밝혔다. 그러나 회사와 개인 SNS의 연관성이 생긴 건 작화가의 잘못이 아니다. 아무런 연관이 없었던 일에 ‘연관’을 만들어낸 건 작화가가 아니라, ‘사상 검증’을 하기로 작정한 일부 유저들이었다. 이번 선례를 만든 유저들에게도 이 사건은 곧 자신들의 족쇄가 될 것이다. 앞으로 그들이 취업할 회사의 고객들이 그들이 작성한 커뮤니티의 게시물을 열람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삭제한 게시물마저 '계약 종료' 사유로 올릴 수 있다면. 어떤 ‘사상’을 검증해야 하는지는 전적으로 고객의 관할이며, 그의 ‘기분’에 달려 있게 된다.
- ‘불법 촬영 규탄’ 리트윗은 어떻게 계약 종료로 이어졌나 (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 시사IN, 23.0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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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여전히 우월한 경제력과 신체 능력을 매력적인 남성의 모습으로 이야기하고 다른 대안 모색에는 게으르다. 단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연애 예능만 봐도 그렇다. 청년언론 '고함20'에서는 '하트시그널의 여자들은 운전하지 않는다'는 기사로 연애 예능에서 나타나는 성 역할 고정관념을 꼬집었다. 어차피 자동차는 협찬임에도 주구장창 남성만 운전하는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너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주차권을 입에 물고 한 손으로 폭풍 후진하는 남성을 멋있게 그려내니까. 이는 적극적인 신체 능력과 자동차를 운용할 수 있는 경제력이 남성성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실과 기대의 괴리 사이에서 청년 남성들은 대안을 모색하기보다 성차별적인 인식을 거듭 학습해가고 있는 듯 보인다. 실로 앞서 언급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성별 규범을 거부하는 여성에 대한 반감을 가진 적대적 성차별주의 성향이 30대 38.7%, 20대 50.5%로 다른 세대 남성보다 작게는 두 배에서 크게는 다섯 배까지 높게 나타난다.
- 가부장적 남성성 유통기한 지났는데… '멋진 차 모는 능력남' 끈질긴 신화 (이한 작가, 한국일보, 23.0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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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박스를 찾은 아기들은 대부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미등록' 상태다. 경찰에 신고된 후 관할구청에 인계돼 아동복지센터로 보내지고, 이후 보육원 등 시설에 간다. 센터는 이 기간 동안 아기를 맡는다. 아기를 기를 형편이 안 될 때도 1~6개월간 위탁해 양육한다. 매년 평균 150~180명의 아기가 이곳에 맡겨진다. 14년간 보호한 아기만 2095명에 달한다. (중략)
유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에 이 목사는 "엄마가 아기를 포기하지 않고 출산까지 했다. 열 달 동안 엄마로서 느낀 모진 아픔과 고통, 눈물이 있다. 고난을 다 거쳐 아기를 살리지 않았나. 밖에 버리지 말고 안전히 여기 갖다 놓으라고 한 것이 어떻게 유기가 될 수 있나"라고 물었다. 사명감으로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던 이 목사지만 요즘 고민이 부쩍 늘었다. 출생 미신고 아동에 대한 경찰 수사와 국회를 통과한 '출생통보제' 때문이다. 최근 출생 미신고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경찰은 대대적 수사에 돌입했다. 베이비박스 역시 수사범위에 포함됐다. 현행법상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기는 것은 유기나 영아유기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 [엄마와 죄책감①] 미혼모들은 신림동 비탈길을 오른다 (김세정 기자, 더 팩트, 23.08.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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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박스 논쟁에서 찬반을 떠나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사회 구조적 문제로 베이비박스라는 하나의 모호한 결론이 도출됐다는 점이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엄마들이 임신으로 힘들 때 의논,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없다. 공적 지원 체계가 없어서 당장 애를 키우고, 갈 데가 없으니까 엄마들이 베이비박스에 가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민정 대표도 "저출산 시대에 국가에서는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지만 막상 임신과 출산을 하는 사람들은 체감하지 못한다. 이들이 정말 뭐가 필요한지 물어보고 맞는 지원을 해줄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승원 사무국장도 베이비박스의 '소멸'을 원한다. 그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미혼모에게는 국가적 지원이 먼저 돼야 한다. 국가가 나서 미혼모에 대판 편견을 없애고, 이들이 아이들을 케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부분을 점차 늘려 복지국가로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엄마와 죄책감②] '선'과 '법'의 경계에 놓인 베이비박스 (김세정 기자, 더 팩트, 23.0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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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이어 임신까지, 사생활을 연달아 대중에 공개하는 것은 분명 부담일 터. ‘운동’과 같은 삶을 지속해 나갈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내가 변화를 만들지 않으면 남들이 해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기엔 제 삶은 너무 소중하고, 부딪히는 게 성격에도 맞는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이쪽이 훨씬 유리하다. 맘카페에 제 (임신 소식) 기사를 공유하며 ‘레즈비언 출산 역겹지 않나요?’라는 혐오적 게시물을 올리는 분이 있었다. 그 게시물에 댓글로 ‘제가 김규진인데, 저도 ‘맘’이라서 (카페에) 들어와 있다. 제가 보고 있다는 거 잊지 말아달라’고 밝히니까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글을 지우더라. 빠른 변화가 일어나는 걸 보면 오히려 힘을 얻는다.”
그는 성소수자로 구성된 부모모임도 만들 생각이다. 성소수자 자녀들을 이해하고 이들과 연대하는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기존의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제는 ’성소수자인’ 부모모임도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체를 밝히는 게 부담스러우시면, 제가 대대적인 얼굴이 돼서 같이 모여서 대화 나누면서 서로 힘이 됐으면 좋겠다. ‘이 어린이집은 혐오를 덜 하더라’ 같은 정보도 공유하고. (웃음).”
- ‘유부녀 레즈비언’에서 ‘레즈비언 엄마’로… “변화 기다리기보단 직접 만들 것“ (이수진 기자, 여성신문, 23.0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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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진씨 부부는 22일 낮 서울의 한 호텔에서 ‘대한민국 저출생 대책 간담회’라는 제목의 베이비샤워를 열었다. 9월에 태어날 라니를 환영하고, 자신들의 임신과 출산을 축복받기 위해서였다.
“4년 전 저희가 결혼한다는 기사에 ‘레즈비언이 나타나면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는데, 제가 아이를 낳게 됐어요. 좀 통쾌하지 않나요.”
출산을 한달여 앞두고, 만삭의 둥근 배가 보이는 배꼽티를 입은 규진씨가 하객석을 향해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우스개를 했다.
4년 전 미국에서 혼인신고를 한 규진씨 부부는 지난달 말 임신 사실을 공개했다. 임신을 공개한 기사엔 축하뿐 아니라 부부를 비난하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규진씨 부부는 악플러들을 비웃듯, 4년 전 부부의 결혼 기사에 악플을 단 이들에게 받은 합의금으로 베이비샤워를 열었다.
- ‘임신 동성부부’ 축복의 만삭 파티…“네 작은 발, 세상에 큰 자국” (장수경 기자, 한겨레, 23.0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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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공주는 이 땅을 떠나고 싶었다. 밀려났다고 해도 좋다. 이 땅을 떠나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산 이들이 있다. 우리가 망각한 이야기다.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인류학자 그레이스 M. 조의 최근작 <전쟁 같은 맛>(2023)에서 그렇게 떠난 양공주의 후반부 삶이 펼쳐진다.
지은이의 어머니 ‘군자(1941~2008)’는 양공주로 일하다가 백인 남성을 만나 미국에 왔다. 배 타느라 부재한 남편 대신 두 자녀를 열심히 키운다. 어느 날 조현병이 찾아온다. 병이 심각해지면서 딸은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된다. 책은 엄마의 환청 속에서 식민지와 전쟁, 기지촌과 군사주의, 인종차별로 얼룩진 한·미·일 현대사의 상처들을 읽는다. “‘타락한 여자’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명예로운 삶을 살았고, ‘정신병자’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이었던 어머니의 존재”에서 존엄함을 찾는다. 양공주들은 열심히 살고 싸웠다. 2022년 9월, 대법원은 기지촌 운영의 위법성과 인권침해 등 정부의 책임을 물어 옛 위안부들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 꼬리표를 붙여 정의하고 동정할 사람들이 아니다.
- 누가 양공주를 멋대로 규정하는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시사IN, 23.08.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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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은 <노는언니>, <골 때리는 그녀들>, <스트릿 우먼 파이터> 등과 자주 함께 언급된다. 남성 눈에 아름다운 ‘응시의 대상이 되던 몸’에서 ‘말하는 몸’을 지나 ‘근육질의 탄탄한 몸에 자부심을 갖는 스포츠인’이나, ‘역동적으로 공을 차고 축구에 진심인 몸’을 지나서 ‘우정 속에서도 승리의 욕망에 눈 뒤집히며 경쟁하는 몸’, ‘전투적으로 포효하며 육탄전을 벌이고 승리하는 몸’으로 나아가고 있는 대중 매체의 흐름이 보인다.
그리고 <사이렌>은 <노는언니>, <골 때리는 그녀들>, <스트릿 우먼 파이터>와 달리 제목에서 유일하게 여성을 강조해서 드러내지 않는다. <사이렌> 제작 발표회에서 이은경 피디는 가장 견제한 것이 ‘여자치고는 잘한다’라는 말이었다며 여성 소방관, 여성 군인 등이 아니라 소방관, 군인으로 호명되길 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유난히 더, 남성을 기본값으로 두는 이 직업군들에서 소수자로 존재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유능하고 멋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직군들의 기본값을 남성으로 둔 것 자체를 바꿔 버리고 싶다는 태도로 읽었다.
- ‘사이렌’ 연출에 있는 것과 없는 것 (조한진희(반디) 작가/활동가, 일다, 23.0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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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염정아가 보여주는 인물들은 배우의 분명한 변신을 방증하기에 더욱 감탄스럽다.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해고돼 노조 생활을 시작한 마트 직원 선희로 분한 것이 2014년 부지영 감독의 영화 <카트>다. 장르적 활력소였던 염정아의 코미디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자연스러운 생활감과 인간미, 소시민적 억척스러움으로 쓰임새가 다변화됐다.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 남편의 비밀에 속 끓이는 수현,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이른 나이에 시한부 선고를 받은 주부 세연, 드라마 <클리닝 업>의 증권가 청소부 용미처럼 보통 사람들의 인생에 닥친 애처로운 시절에 배우 염정아를 대입하는 작품들이 늘어난 것이다. <외계+인> 1부의 삼각산 신선 흑설도 예외는 아니어서 갑자기 와이어를 타고 거울 무술을 구사하는 이 낯선 캐릭터를 관객은 외려 <외계+인>에서 가장 친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받아들였다. 모두 40대에 일군 변화다. 이후로 염정아를 향한 세간의 평가도 도회적이고 차가운 이미지라는 게으른 수식 대신 내색 없는 털털함 같은 종류로 바뀌었다.
- 그의 영화로운 얼굴들, ‘밀수’의 염정아 배우론 (김소미 기자/영화평론가, 씨네21, 23.0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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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가 실존하는 인간이라면 일어설 수조차 없을 거예요. 신체 비율과 체중, 무게중심 때문에 말이죠. 이런 물리적 불가능성은 우리가 소녀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에요. 하지만 64년 동안 바비의 브랜드인 마텔은 많이 발전해왔어요. 특히 2016년부터는 수많은 체형, 여러 다양성을 지닌 여성들의 모습을 담아내기 시작했죠. 전 그런 아이디어에서 영화 〈바비〉를 시작하고 싶었어요. 이상적인 것이 무엇인지와는 상관없이, 실제로 존재하는 많은 여성을 포괄하려고 했죠. 그럼으로써 바비에 대한 고전적인 비판들과 상호작용하고 싶었어요. 사실 그 비판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고, 1980년대생인 제가 어릴 적부터 함께해왔던 것이기도 해요. 그래서 저희 어머니도 바비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고요. 하지만 동시에 저는, 바비의 변화를 통해 세상이 얼마나 진보하고 있는지 정말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궁극적으로 제가 만들고자 했던 영화는 소녀와 소년들, 특히 여자아이들에게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미 완벽하다는 걸 알려주고, 그것에 더 이상 다른 억지스러운 어떤 것도 빼거나 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요.
- 그레타 거윅이 나아갈 가장 먼 곳 (이예지 기자, 코스모폴리탄, 23.07.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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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트리히는 과학 저널 <사이언스>와 인터뷰를 하고 당시 상황에 대해 추가 설명을 했다. 기자가 '차별당한다고 느끼는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이 단체 사진을 촬영할 때였어요. 주최 측이 여성 수상자들에게 맨 앞줄 의자에 앉으라고 했죠. 그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여성 수상자들은 결국 맨 앞줄에 섰습니다. 그보다 훨씬 숫자가 많은 남성 수상자들은 뒤에 서야 했죠. 여성들이 주목받는 동안 모든 남성 참가자들은 차별당했다고 생각합니다. 말도 안 돼요. 완전히 말도 안 되는 거죠.”
올해 린다우 회의에 참가한 노벨상 수상자 중 남성은 39명, 여성은 5명이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 전체로 범위를 확대하면 남성 수상자는 총 892명, 여성은 60명이다. 뷔트리히는 노벨상 수상자 사이에 존재하는 성별 불균형은 문제 삼지 않았다. 여성 5명이 남성 39명 앞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 그가 말하는 남성 역차별의 근거였다. <사이언스>는 뷔트리히의 인터뷰를 실으면서 이번 일이 학계의 분열(schism)을 나타낸다고 썼다. 학계 원로와 이제 커리어 초기 단계를 밟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 사이가 갈려 있다는 것이다. 학문적 단절이 아니다. 성평등과 다양성, 포용 등의 가치를 둘러싼 견해 차이가 빚어낸 단절이다.
- “남성 과학자로서 차별당한다” 노벨상 수상자의 오류 (김진경 자유기고가, 시사IN, 23.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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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만은 우리가 지닌 성 역할 관념이 많은 기업 혹은 개발자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끼쳤다고 본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고객 서비스 분야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AI의 여성 목소리 설정이 더 대중화되면서 이러한 초기 고정관념이 더욱 강화됩니다.”
그러면서 맥도만은 AI가 보통 사용자에게 극히 공손한 태도로 정보 전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이는 성차별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이는 남성의 성차별적 판타지를 부추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중략)
“로라 멀비라는 유명한 이론가는 예술에서의 남성의 시선, 남성 예술가가 여성을 어떻게 표현하는 지 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멀비에 따르면 이들은 여성을 그저 순종적인 존재, 벌거벗은 존재, 남성 욕망의 대상 등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떤 면에서 로봇 공학에도 이러한 남성의 시선이 그대로 투영됐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저 표면의 이미지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미지 이면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감정이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생명력이 없습니다.”
“이 새로운 인공물(휴머노이드)엔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 인간관계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 등이 담겨 있지 않은 거죠.”
그러면서 리처드슨 교수는 이번 컨퍼런스에도 전시된, 성인 여성을 닮은 휴머노이드를 볼 때마다 “꼭두각시” 같이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 왜 휴머노이드는 대부분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BBC 코리아, 23.08.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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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은 여성이 ‘이슬람 가치’를 따르는 한 특정 분야에선 일할 수 있다고 여전히 주장하지만 현실을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최근 탈레반이 전국의 모든 미용실을 폐쇄해 여성 일자리 약 6만개가 사라졌다. 탈레반식 규칙에 따르면 여성은 여성 의료인에게만 진료를 받을 수 있는데, 여성의 고등교육이 막히며 여성 의사, 조산사, 간호사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해에는 여성이 국제 비영리기구(NGO)에서 일하는 것도 금지시켰다. 자흐라는 “나는 스무 살이기 때문에 공부를 하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허락되지 않았다. 최선의 방법은 이 나라를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간 언론인이자 여성인권운동가로 올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른 마흐부바 세라즈는 “이제 여성의 자유 같은 건 없다. 아프간 여성들은 사회로부터, 일상으로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천천히 지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 탈레반의 아프간 재집권 2년, 지워지는 ‘여성의 존재’ (김서영 기자, 경향신문, 23.0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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