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안녕하세요. 읽을 만한 기획기사를 따로 모은 REPORT EDITION으로 찾아온 뉴스 헐리버리입니다. 레터를 발행하며 월요일에 인사드리는 건 처음인데요, 모쪼록 헐리버리에서 준비한 다양한 기사들과 함께 깊이와 관점을 더하는 한 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번 호에서는 가정 내 성 불평등이 비혼·비출산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이같은 현실에서도 부성 우선주의에 균열을 내고 있는 진보에 대해 다루고 있는 기사를 몇 꼭지 준비했습니다.
또한 ‘데이트폭력’이란 용어가 ‘교제폭력’으로 대체되고 있는 흐름 위에서 ‘연인폭력’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오피니언 기사와, 성폭력 피해를 알린 교사가 교육청으로부터 징계를 받는 등 교육 현장에서의 성인지 감수성 결여로 2차 피해를 받고 있는 교사들의 노동환경에 대한 기사도 정리했습니다.
한편 <퀸메이커>, <길복순>, <대행사> 등 인기리에 방영된 최신 영상물을 통해 여성서사의 진화상을 짚어낸 심층기사와,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이 불러온 풋살 열풍에 올라탄, 여성 기자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풋살팀의 성장기, 한국 여자야구의 현 주소와 방향성을 확인하기 위한 일본 여자야구 국가대표팀 감독과의 인터뷰 등을 모아 최근 몇 년간 미디어가 다루고 있는 여성상의 변화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헐리버리는 여성과 여성상에 대해, 여성의 성취와 인권에 대해 다룬 더욱 다양한 기사들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에디터 윤단우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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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출산을 결심한 이들이 출산의 최대 장애물로 꼽는 요인은 성차별적 가족문화다. 개인이 아닌 부부를 가족의 기본 단위로 보고 이 부부에게 사회적·경제적 생존 책임을 전적으로 떠맡기는 게 전통적 한국의 가족문화. 이는 ‘남성 부양·여성 가사노동’이라는 성별 분업으로 유지됐다. 과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남성 외벌이만으로 생존이 불가능해지면서 현실적 효용가치를 다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에게는 주로 부양을, 여성에게는 가사노동을 요구하는 성차별적 관념은 뿌리 깊다. 관념과 현실의 괴리로 개인은 사회적 성취와 출산·육아 중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 결국 ‘결혼+비출산’ 혹은 ‘비혼+비출산’이라는 선택지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결혼-출산’을 전제로 가족을 상상하는 기성세대는 이런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다. 임씨 부부의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안정적 직장에 다니는 부부의 가구 소득은 연 1억1,000만 원 정도다. 부모 세대에게 이 부부의 경제적 조건은 아이를 낳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다. 정작 임씨는 “업무상 1주일에 나흘은 업계 사람들을 만나는 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육아의 짐을 엄마에게만 지우는 현실이 눈앞에 있는데 결혼했으니 자연히 아이를 낳을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 출산 보이콧 이유 “차별적 성 역할 그대로...‘내 삶’ 포기 안 해” (손효숙 기자, 한국일보, 23.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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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호주제 폐지 이후 15년이 지났지만 부계사회의 전통은 여전히 공고하다. 혼인신고 때 엄마 성씨를 따르겠다며 협의서를 제출하는 경우는 전체 신고 1000건 가운데 2~3건 남짓에 불과하다. 부부의 아들이 ‘원씨’라고 하면 대뜸 질문부터 훅 들어오곤 한다. 주로 남편에게 ‘그렇게 한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묻는 식이다. 원씨는 “ ‘그거 뭐 중요하다고, 그냥 아빠 성 따르면 되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데 엄마 성을 따라도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다”고 했다.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2020년 5월 아빠 성씨를 기본으로 따르는 ‘부성 우선주의’를 폐지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여성가족부도 2025년까지 자녀 출생신고 시 부모가 자녀의 성·본을 협의해 정할 수 있도록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은 현재 추진 중단된 상태다.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부성 우선주의가 위헌인지 심리하고 있는 헌법재판소에 ‘혼인신고 시 자녀의 성·본을 협의하도록 한 것은 위헌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현실에서 ‘가정 내 평등을 가로막는 장벽이 얼마나 촘촘하고 견고한지’ 느꼈던 부부는 엄마 성씨를 쉽고 편하게 따를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원씨는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 가족을 포용하는지와 직결되는 문제”라고 했다. 둘째에겐 ‘아빠 성’을 물려주고 싶다는 두 사람은 부성 우선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현 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헌법소원이나 행정소송을 내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변호사인 원씨와 국회의원 보좌관인 유씨는 각자 자리에서 다양성을 뒷받침하는 제도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힘쓸 계획이라고 했다.
- 1000건 중 2~3건 ‘엄마 성’…“결혼 전 아이 성씨 결정에 당황” (김송이 기자, 경향신문, 23.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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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자녀의 성·본 변경은 재혼 가정에서 계부나 양부의 성·본으로 변경을 구하거나, 이혼이나 사별 후 어머니 혼자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에서 어머니의 성·본으로 변경을 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사건에서처럼 혼인 중인 부부 사이에서 자녀의 성·본을 어머니의 성·본으로 변경을 구하는 경우 이를 허가할 수 있는지에 관해 논란이 있을 수 있었다.
법원은 "본인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성·본 변경을 허가함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의정부지방법원 이의진 판사는 "친권자․양육자의 의사에 비춰 볼 때, 이 사건 청구대로 사건 본인의 성·본 변경이 이뤄질 경우 내부적으로 가족 사이의 정서적 통합은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의진 판사는 "성·본 변경으로 인해 대외적으로 외국 이주민의 혈통임을 드러내고 또 사회의 주류 질서라고 할 부성주의에 반하는 외양이 형성돼 비우호적인 호기심과 편견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그렇다 하더라도 이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 이를 이유로 어머니와 가족 구성원의 개인적 존엄과 양성평등이라는 헌법상 이익을 무시하는 근거가 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한국서 태어난 子, 베트남 엄마 성 따르도록 변경 허가…"편견 이겨내고파" (고무성 기자, 노컷뉴스, 23.0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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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언론의 평가와 달리 ‘데이트폭력’은 연인 사이의 폭력이 사적영역의 일이 아니라 공론장에서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사용한 말이다. 지난 2001년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데이트 폭력 상담실’ 홈페이지를 만들고 데이트 폭력을 온라인으로 상담하기 시작했다. 상담소는 데이트 폭력을 ‘데이트 중 일어난 육체적·언어적 폭력’으로 정의하면서 데이트하는 사이에서도 폭력이 가능하고 관련 고민을 상담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처음 의도와 달리 데이트폭력이란 말이 20여년간 사용되면서 그동안 사회적 의미가 다소 달라졌다. 데이트라는 말이 낭만적인 뜻을 담고 있어 폭력의 심각성을 희석하고 데이트폭력이 사적인 영역에서 ‘사랑싸움’ 정도로 인식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진 것이다.
‘데이트폭력’이란 단어에 대해 문제가 제기된 지점은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다. 데이트하는 관계에서 벌어진 폭력이 사적인 문제로 축소돼 제3자의 개입을 차단하거나 그 관계를 사랑에 기반한 긍정적 이미지로 취급하는 게 문제라면 대체 단어는 이런 문제점을 없애는 방식으로 결정해야 한다.
- 데이트폭력·교제폭력 용어 대신 연인폭력은 어떨까 (장슬기 기자, 미디어오늘, 23.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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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정신과 의사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했던 경북도 김천시 교사 A씨. 조용히 넘어가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2018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피해 사실을 알렸다. 이후 가해자로부터 모욕과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약식명령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러자 김천교육지원청은 2019년 4월 국가공무원법 제63조 ‘품위 유지 의무’ 위반으로 A씨에게 징계(견책)를 내리고 타 지역으로 강제 전보 조치했다. A씨가 ‘정식 재판 결과를 기다려 달라’고 의견서까지 보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이어진 정식 재판에서 가해자는 A씨에 대한 처벌의사가 없다고 밝혔고, 2019년 6월 결과적으로 공소도 기각됐다. 징계의 근거가 사라진 셈이다. 이에 피해자가 경북도교육청에 징계 철회를 요청했지만, 도교육청은 “성폭력 피해를 알릴 수 있는 다른 방법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며 “이미 내려진 징계에 대한 취소나 철회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지역여성단체가 ‘2차 가해’라며 비판하자, 도교육감은 “2차 가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육청의 2차 가해는 계속됐다. 2020년 4월, A씨의 징계를 담당했던 장학사가 근무하는 학교를 찾아와 ‘징계에 이의가 없다’는 각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한 것이다. ‘부당 징계’라는 민원이 수십 건 들어왔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 해당 장학사는 A씨 학교에 교장으로 부임했고, A씨는 정신적 충격에 또 다시 휴직해야 했다.
- 성폭력 피해 알렸다고 ‘징계’하는 교육청… 교사들, 교단 떠난다 (이수진 기자, 여성신문, 23.0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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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은 “한국 드라마에서는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맞서거나 여성의 모습에 대한 기존의 기대를 뒤집는 등 여성이 세상을 움직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평했다. 말 그대로 ‘센 언니’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퀸메이커’의 주인공 황도희(김희애 분)는 재벌가 비리를 뒤처리하는 해결사였다. 하지만 한 직원의 억울한 죽음을 겪은 후 재벌가와 갈라선다. 그리고 그들의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선거판에 뛰어든다.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에서 주인공 길복순(전도연 분)은 살인 청부업계의 전설로 일컬어지는 인물이자 동시에 한 아이의 엄마로 그려진다. 인기리에 종영된 JTBC 드라마 ‘대행사’의 고아인은 그룹 내 최초의 여성 임원 타이틀을 다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녀의 야망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룹 내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하며 쟁취해 나가는 인물이다.
‘이야기’는 그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특히 드라마나 영화와 같이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콘텐츠는 더욱 그렇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상업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그 이야기는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지금 이 시대, K-콘텐츠가 ‘센 언니’들의 활약에 주목하는 이유를 따라가 봤다.
- K-콘텐츠 점령한 ‘센 언니’들…유리 천장 뚫는 여성 서사의 진화 (이정흔 기자, 한경비즈니스, 23.0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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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비에스(SBS)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 덕분에 풋살을 즐기는 여성이 크게 늘었지만, 그라운드 위에 선 여성은 여전히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사방이 뚫린 야외 구장에서 연습하는 날이면,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평가하는 듯한 얼굴로 뚫어져라 쳐다보는 남성들의 시선이 따라왔다. 무례한 일인 줄도 모르고 10분 넘게 가만히 선 채 구경하던 한 남성이 “저렇게 차면 재미는 있겠네”라고 비웃듯 말하는 걸 우연히 들은 날에는 “아, 이래서 ‘야구하니’ 선배들이 유니폼에 회사 이름 크게 박지 말랬구나” 생각했다.
여성용 풋살화와 신가드(정강이 보호대) 등 용품을 사는 것도 큰일이었다. 대부분의 스포츠 브랜드가 성인용 풋살화를 250 사이즈부터 들여놓은 탓에, 그보다 발이 작은 대다수 선수가 아동용을 사 신어야 했다. 그마저도 최근 들어 찾는 이가 많아져 원하는 사이즈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평소 230 사이즈 운동화를 신는 손지민 기자는 “매장 수십 곳에 전화를 돌려 사이즈가 있다는 한 곳을 겨우 찾아갔다. 발에 맞는 풋살화가 있다는 것만도 감지덕지라 원하는 디자인을 고르는 건 사치였다”고 했다. 남성용 샤워실까지 갖춰두고도 화장실은 남성용 소변기 하나만 달랑, 여성도 드나들 수 있다는 가능성은 애초에 상상조차 못한 채 만든 듯한 풋살장도 있었다. 이 정도면 여성들의 공놀이를 온 사회가 나서서 뜯어말렸던 것 맞지 않나?
- 공 좀 하니? ‘골 때리는 그녀들’이 된 기자들 (정인선 기자, 한겨레21, 23.0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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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감독은 여학생을 위한 고등학교 야구부가 5개에서 60개까지 늘어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로 ‘인식의 변화’를 꼽았다. 리사 감독은 “일본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다. 일본 남성들도 여성도 야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많은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50년 전만 해도 여성이 ‘나도 야구를 할 거야’ 하면 ‘여자는 소프트볼이나 하라’고 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 30년이 넘게 걸렸다”라고 설명했다.
일본 여자 선수들은 시속 110~120㎞ 공을 쉽게 던진다. 일본 여자야구의 ‘살아있는 역사’ 사토 아야미는 속구 최고 시속 126㎞를 뿌리기도 했다. 대한민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90~100㎞대 공을 던지는 데에 비해 월등한 속도다. 그렇지만 리사 감독은 “우리가 그렇게 빠른 공을 던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간 130㎞대 공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빠른 구속의 비결로 “체계적인 근력 운동을 통한 강한 근육”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리사 감독은 “야구에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우리팀이 언제나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여자야구 선수들에게 ‘포기하지 마라, 무서워하지 마라’라고 하고 싶다. 포기하는 순간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 ‘세계 1위’ 일본도 처음엔 한국처럼 女야구 불모지였다 (황혜정 기자, 스포츠서울, 23.06.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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